내용 이해가 쉽도록 위 사이트 원 번역문 내용을 단문형태로 끊어 표현을 바꿔 기재한다.
다만, 여건상 일부분만 살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작업중 파일을 별도로 만든다.
그리고 클라우드 드라이브 폴더에 보관한다.
그리고 이후 계속 수정보완해가기로 한다.
그리고 완료되면 본 페이지에 직접 붙여나가기로 한다.
작업중인 파일은 다음 폴더 안에서 K0647_T0001_in 파일을 참조하면 된다.
https://drive.google.com
●차후 링크가 변경되어 연결되지 않을 때는 다음 페이지 안내를 참조한다. buddhism0077
wikiart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Konstantin-Korovin-a-parisian-balcony-1908
Artist: Konstantin-Korovin
Konstantin Alekseyevich Korovin ( 러시아어 : Константин Алексеевич Коровин , 이름은 종종 Constantin 이라고 부름 ; 12 월 5 일 [ OS 11 월 23 일] 1861 - 9 월 11 일, 1939)은 러시아의 인상파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예술가가 가장 좋아하는 테마 중 하나는 파리였습니다. 1923 년 Korovin은 그의 심장 상태를 치료하고 그의 장애를 가진 아들을 돕기 위해 파리로 이사했습니다 . Korovin의 작품에 대한 대규모 전시회가있을 예정 이었지만 작품은 도난 당했고 Korovin은 무일푼으로 남았습니다[...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Konstantin_Korovin Title : a-parisian-balcony-1908 Info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Prajna (Buddhist Monk) [san-chn]
buddhânubhāvena 以佛神力, 承佛威神, 承佛神力 [san-eng]
avyayavargaḥ $ 범어 the class of indeclinable words [pali-chn]
sambhāra 資用 [pal-eng]
bidala $ 팔리어 nt.a split pea or bamboo; a lath. [Eng-Ch-Eng]
五智佛 【參照: 五佛】 [Muller-jpn-Eng]
無盡意 ムジンイ (name) Akṣayamati [Glossary_of_Buddhism-Eng]
SIX PLANES OF EXISTENCE☞ Syn: Six Paths; Six States of Existence. See also: Saha World; Three Evil Paths. The paths within the realm of Birth and Death. They include the Three Evil Paths (hells, hungry ghosts, animality) and the paths of humans, Asuras and Celestials. These paths can be understood as states of mind. Editor / Tam: 161 “Representation of the totality of mundane conditional existence: (1) animals (symbolizing ignorance), (2) ghosts (greed), (3) titans /Asuras (aggression), (4) hells (ignorance, greed, and aggression), (5) humanity (social virtue), (6) celestial states (meditational abstractions).” Chih-I /Cleary: 202 #0921 All sentient beings in Samsara revolve within these six paths or planes of existence according to their karma. To be liberated is to be freed from destined rebirth in these planes.” Chan: 492.
[fra-eng]
aménager $ 불어 prepare [chn_eng_soothil]
劍波 Kampa, Bhūkampa; deva of earthquakes.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ṁ]
▼●[羅什] 「須菩提, 於意云何? 斯陀含能作是念, 我得斯陀含果不?」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사다함이 ‘내가 사다함의 과위를 얻었노라.’ 고 생각하겠느냐?” [玄奘] 佛告善現: 於汝意云何, 諸一來者頗作是念 ࡔ我能證得一來果ࡕ不? [義淨] 妙生, 於汝意云何, 諸一來者頗作是念 ࡔ我得一來果ࡕ不? 09-04 भगवानाह- तकिं मन्यसे सुभूते अपि नु सकृदागामिन एवं भवति-मया सकृदागामिफलं प्राप्तमिति ? bhagavānāha | tatkiṁ manyase subhūte | api nu sakṛdāgāmina evaṁ bhavati mayā sakṛdāgāmiphalaṁ prāptamiti | 복덕갖춘분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또한 반드시, 한번만더돌아올자에 의해 ‘나에 의해 한 번만 더 돌아온다는 결과가 얻어졌다’라고 그러한 (산냐가) 생겨나겠느냐?” ▼▷[bhagavānāha] ① bhagavān(ƾ.nom.) + āha(ƺ.) → [복덕갖춘분께서、 말씀하셨다.] ▼▷[tatkiṁ] ① tat(pn.ƿ.acc.) + kiṁ(ƺ.) → [그것을、 어떻게] ▼[manyase] ① manyase(pres.Ⅱ.sg.) → [(그대는) 생각하는가?] ▼[subhūte] ① subhūte(ƾ.voc.) → [수보리여!] ▼▷[api] ① api(ƺ.) → [또한] ▼[nu] ① nu(ƺ.) → [반드시] ▼[sakṛdāgāmina] ① sakṛtāgāmina(ƾ.ins.) → [한번만더돌아올자에 의해] ② sakṛt(ƺ. once; at one time, on one occasion; at once; always) ② āgāmin(ƾ. coming; an epithet of the forth among the 4 Buddhist orders) < āgam(1.ǁ. to come, come near; to have recourse to) ▼[evaṁ] ① evaṁ(ƺ.) → [그러한] ▼[bhavati] ① bhavati(pres.Ⅲ.sg.) → [(+산냐가) 생겨나겠는가?] ② bhū(1.ǁ. to be, become; to be born or produced; to spring or proceed from; to happen) ▼[mayā] ① mayā(pn.Ⅰ.ins.) → [나에 의해] ▼[sakṛdāgāmiphalaṁ] ① sakṛt+ āgāmi+phalaṁ(ƿ.nom.) → [한 번 더 돌아온다는 결과가] ② phala(ƿ. fruit; crop, produce; a result; aim, purpose; use, good) ▼[prāptamiti] ① prāptam(njp.→ƿ.nom.) + iti(ƺ.) → [얻어졌다、 라고.] ② prāpta(p.p. got, obtained, won, acquired; reached, attained to; met with, found)
제목 : 이상 37부 모두 176권은 북천축(北天竺) 건달국(犍達國) 삼장법사(三藏法師) 중국말로 지덕(至德) 또는 불덕(佛德)이라고도 하는 사나굴다(闍那崛多)의 번역이다.
그는 주(周) 명제(明帝) 때 무성(武成, 559~560)년 초에 동학(同學) 야사굴다(耶舍崛多)와 함께 스승인 마가타국(摩伽陀國) 삼장선사(三藏禪師) 사나야사(闍那耶舍)를 따라 범어 경전을 가지고 입국했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중국말[方言]을 20여 년 동안 익혔는데, 사나굴다가 가장 훌륭했다. 주(周)나라 때에는 서울에 있다가 촉(蜀)땅으로 갔는데 가는 곳마다 새로운 경전을 번역했다. 혹 기존에 빠진 것을 만나면 문장이나 내용을 모두 바로잡았다. 당시 삿된 무리가 소란을 일으켜 임금의 권위에 대항했다. 건덕(建德) 3년(574)에 도교와 불교를 탄압하는 상황 속에서 중국의 칠중(七衆)26)이 모두 속인의 옷을 걸치게 되었다. 사나굴다의 스승과 도반도 또한 유혹과 핍박을 받게 되었으나, 원래부터 목숨을 버리더라도 사방을 여행할 것을 맹세했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불교를 홍포하는 것으로 자신의 과업을 삼기로 했다. 그러나 불법이 능멸되는 상황을 만났기 때문에 본래의 의도와 어긋나게 되자, 본래부터 자신은 인도 사람[梵人]임을 핑계로 중국(속인)의 복식을 따르지 않았다. 옛날에 세운 뜻을 지키면서 다시 돌아갈 것을 부탁하니, 나라에서 그들의 명성을 듣고 예를 갖추어 보내 주었다. 우리 중국은 진실로 염부제의 육지와 바다이다. 먼 변방의 의복이나 생김새가 다른 족속들이 모두 쏟아져 들어오고자 하는 곳이다. 그들이 사는 곳이 안락하고 편안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이곳에 오기를 희망했다. 중국의 문화를 사모하여 방문한 이들은 수용하고, 고향을 그리워하여 가고자 하는 이는 막지 않았다. 그가 다시 북인도로 향하는 길에 돌궐(突厥)을 경유하다가 타발가한(他鉢可汗)27)을 만나게 되었는데, 간곡하게 머물기를 요청하였기 때문에 서로 왕복하면서 이야기했다. “주(周)나라에는 흥성하다가 붕괴됨이 있어 스님께서 수고롭게도 갔다가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흥하고 폐함이 없으니 편안히 머무시길 바랍니다. 물자를 공급하고 공양하여 마땅히 마음에 맞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마침내 10여 년을 머물렀는데, 스승과 동학은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났고 오직 사나굴다만 살아남았다. 당시 상주(相州)의 사문인 보섬(寶暹)ㆍ도수(道邃)ㆍ지주(智周)ㆍ승위(僧威)ㆍ법보(法寶)ㆍ승담(僧曇)ㆍ지조(智照)ㆍ승률(僧律) 등 11인이 제(齊)나라 무평(武平) 6년(570)에 서로 약속하여 서역을 여행하고서 7년 만에 돌아오는 길에 범본 경전 260부를 가지고 돌궐에 이르렀다. 주(周)나라가 제(齊)나라를 멸망시켰으며, 불법을 파괴하여 돌아갈 곳이 없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 돌아가려고 해도 불가능했으므로 그 나라(돌궐)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나굴다[至德]를 만났다. 마치 목마를 때 물을 마신 것 같았으며, 어둠 속에서 불빛을 만난 듯 했다. 바로 새로 가져온 경전을 함께 살펴보고는 사나굴다에게 경전의 제목과 표제를 번역하여 옛 목록과 비교하고 대조하여 주기를 요청하였는데, 더욱 편리하게 되어 있음을 느꼈고, 앞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점도 있었다. 승률 등은 진심으로 내심 각자 보배를 얻고 뛰어난 인물을 만났으니 헛되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됨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함께 향을 사르고 번역하기를 맹서했다. 수나라가 선양을 받자 불법은 곧바로 크게 흥기했다. 지주(智周) 등이 경전을 가지고 온 것은 시운(時運)보다 앞선 것이었다. 개황(開皇) 원년(581) 12월[季冬]에 이르러 도착하였다. 부사(付司)에게 칙령을 내려 사람을 찾아서 번역하도록 했다. 사나굴다가 개황 4년(584)에 비로소 입국하였다. 나라 안 곳곳에서 선행을 일으키고 불법을 크게 선양하였다. 개황 5년(585)에 칙령을 내려 사나굴다에게 바라문(婆羅門) 사문 야나갈다(若那竭多)와 개부(開府)의 고공(高恭), 공식도독(恭息都督)인 고천노(高天奴)ㆍ고화인(高和仁), 그리고 바라문 사문 비사달(毘舍達) 등 승속[道俗] 6인이 내사내성(內史內省)에서 범어 고서와 천문[乾文]에 관한 글들을 번역하게 했다. 이때 광제사(廣濟寺)에는 야사(耶舍) 혼자 있었다. 야사가 번역을 행한 지 7년 만에 칙령으로 사나굴다와 함께 번역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왕래하며 12년 만에 경서 번역을 마무리하였다. 합치면 모두 2백여 권이 되었는데, 황제에게 나아가 마쳤다고 아뢰었다. 이때 야사는 이미 입적한 상태였다. 드디어 사나굴다에게 칙령을 내려 번역을 전적으로 주관하게 하여 법석(法席)을 옮겨 대흥선사로 가게 되었다. 다시 바라문 사문 달마급다(達摩笈多)와 고천노(高天奴)ㆍ고화인(高和仁) 형제 등을 불러다가 함께 번역을 하였다. 또한 승휴(僧休)ㆍ법찬(法粲)ㆍ법경(法經)ㆍ혜장(慧藏)ㆍ홍준(洪遵)ㆍ혜원(慧遠)ㆍ법찬(法纂)ㆍ승휘(僧暉)ㆍ명목(明穆)ㆍ담천(曇遷) 등 10대덕을 증원시켜 처음부터 끝까지 관장하도록 하고 방향을 바로잡았다. 14부(部)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등 76권은 모두 다른 곳에서 11년 전에 사나굴다가 직접 번역한 것이다. 사문 언종(彦琮)이 서문을 단 것은 모두 17부이고, 『법거위덕경(法炬威德經)』 등 89권이다. 12년(592)에 이르러 대흥선사(大興善寺) 선당(禪堂) 안에서 번역한 것이다. 사문 달마급다와 고천노 형제 등이 도왔고, 사문 명목(明穆)과 사문 언종(彦琮)이 거듭 범본과 대조하고 다시금 교감하고 문장의 의미를 정리했다. 그 외에도 90여 부가 더 있었는데, 계속해서 번역을 마친 것은 첨부해서 실었다. 우러러 생각해 보면 여래의 금구(金口)에서 나온 말씀이 갖가지 중생들의 몽매함을 일깨워 주는 것은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서 밝게 비추는 것과 같다. 가섭과 아난이 부처님의 말씀[梵音]을 직접 듣고 결집하여 패엽[皮牒]에 기록한 것은 마치 횃불을 들고 어두운 밤을 밝힌 것과 같다. 그러나 후한에서 지금까지 나라와 풍속이 달라서 번역하여 문장으로 옮긴 것은 반딧불이 방안을 밝힌 것과 같다. 바라는 것은 부싯돌의 불꽃으로 태양의 그 광채를 계승하여 그림자로써 광명을 전하는 것이다. 불법의 요체는 계속 흘러 중생들을 윤택하게 적시는 것이 끊임이 없을 것이다. 만약 진위와 본말을 논의하자면 같은 위치에 놓고 비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