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이해가 쉽도록 위 사이트 원 번역문 내용을 단문형태로 끊어 표현을 바꿔 기재한다.
다만, 여건상 일부분만 살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작업중 파일을 별도로 만든다.
그리고 클라우드 드라이브 폴더에 보관한다.
그리고 이후 계속 수정보완해가기로 한다.
그리고 완료되면 본 페이지에 직접 붙여나가기로 한다.
작업중인 파일은 다음 폴더 안에서 K0405_T0649_in 파일을 참조하면 된다.
https://drive.google.com
●차후 링크가 변경되어 연결되지 않을 때는 다음 페이지 안내를 참조한다. buddhism0077
wikiart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ivan-aivazovsky-the-bay-of-naples-view-of-vesuvius-1879
Artist: ivan-aivazovsky Ivan Konstantinovich Aivazovsky (Russian: Ива́н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Айвазо́вский; 29 July 1817 – 2 May 1900) was a Russian Romantic painter who is considered one of the greatest masters of marine art. Baptized as Hovhannes Aivazian, he was born into an Armenian family in the Black Sea port of Feodosia in Crimea and was mostly based there.[...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Ivan_Aivazovsky Title : the-bay-of-naples-view-of-vesuvius-1879 Info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Store consciousness [san-chn]
kṣipta-cetas 心狂亂 [san-eng]
pravyathitāḥ $ 범어 perturbed [pali-chn]
lokuttara 出世間 [pal-eng]
–atvaa $ 팔리어 abs. of jaanaatihaving known; having found out. [Eng-Ch-Eng]
大寒林聖難拏陀羅尼經 The Da hanlin shengnan na tuoluonijing; Skt. Maha^/si^tapati^-vidya^ra^jn~i^; Tib. ('phags pa) be con chen po zhes bya ba'i gzungs (To.606/958, P.308/583); (Dha^ran!i^ of the Holy Dan!d!a (for the Great Cold Forest)). 1 fasc. (T 1392.21.908-911), trans. Fatian 法天. Spoken by the Bhagavan to Rahula, who is wandering lost in the great cold forest at Ingika^yatana; he is taught the "bludgeon" (dan!d!a 難拏) spell of Maha^/si^tapati^ (nee' Maha^/si^tavani^), who grants protection from wild beasts, venomous insects, criminals and demons. Partly conforms to the fourth text of the Pan~caraks!a^ corpus. BGBT4/90. [Muller-jpn-Eng]
增進 ゾウシン to enlarge and develop; [Glossary_of_Buddhism-Eng]
TEMPLES☞ See also: Amida-ji; China (Buddhism); Japan (Buddhism). In East and Southeast Asia, according to most observers, there is no real division into Zen and Pure Land temples, as the two forms of practice tend to co-exist on the same premises. In Japan, on the other hand, there are distinct Zen and Pure Land temples. Note: Apparently, the synthesis of various Buddhist schools, which took place in China and other parts of East Asia after the golden period of Chinese Buddhism (9th Century), never occured in Japan. Thus, many of the quasi-distinctions and differences that exist among schools and traditions (Zen, Pure Land etc.) in Japan were transfered in toto to America, in spite of the best efforts of D. T. Suzuki and others.
[fra-eng]
cuisinent $ 불어 cook [chn_eng_soothil]
圓戒 v. 圓頓戒.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ṁ]
▼●[羅什] 「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世尊, 我不作是念, 我是離欲阿羅漢.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중에 제일 이라 하였는데, 이는 욕심을 여읜 아라한(離欲阿羅漢)이기 때문입니다마는, 저는 스스로 욕심을 여읜 아라한이라고 생각치는 않나이다. [玄奘] 所以者何? 世尊! 如來、應、正等覺說我得無諍住, 最為第一. 世尊! 我雖是阿羅漢永離貪欲, 而我未曾作如是念: ࡔ我得阿羅漢永離貪欲ࡕ. [義淨] 世尊! 如來說我得無諍住中最為第一. 世尊! 我是阿羅漢離於欲染, 而實未曾作如是念: ࡔ我是阿羅漢ࡕ. 09-10 तत्कस्य हेतोः ? अहमस्मि भगवंस्तथागतेनार्हता सम्यक्संबुद्धेन अरणाविहारिणामग्र्यो निर्दिष्टः। अहमस्मि भगवन् अर्हन् वीतरागः। न च मे भगवन्नेवं भवति- अर्हन्नस्म्यहं वीतराग इति। tatkasya hetoḥ | ahamasmi bhagavaṁstathāgatenārhatā samyaksambuddhena araṇāvihāriṇāmagryo nirdiṣṭaḥ | ahamasmi bhagavan arhan vītarāgaḥ | na ca me bhagavannevaṁ bhavati arhannasmyahaṁ vītarāga iti | “그것은 어떤 이유인가 하오면, 복덕갖춘분이시여! 저는 응당공양올려야되며 바르고동등하게깨달으신 그렇게오신분에 의해 다툼 없이 머무는 자들 가운데 최고라고 지목되었습니다. 복덕갖춘분이시여! 저는 응당공양올려야될 자이며 욕망을 여읜 자입니다. 그러나, 복덕갖춘분이시여! 저의 경우에는 ‘나는 응당공양올려야될 자이며 욕망을 여읜 자이다’라는 (산냐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tatkasya] ① tat(pn.ƿ.nom.) + kasya(pn.ƾ.gen.) → [그것은、 어떤] ▼[hetoḥ] ① hetoḥ(ƾ.gen.) → [이유의? → 이유인가 하오면,] ▼▷[ahamasmi] ① aham(pn.Ⅰ.nom.) + asmi(pres.Ⅰ.sg.) → [저는、 (~입니다)] ▼[bhagavaṁstathāgatenārhatā] ① bhagavan(ƾ.voc.) +|s|+ tathāgatena(ƾ.ins.) + arhatā(nj.→ƾ.ins.) → [복덕갖춘분이시여! 그렇게오신분에 의해、 응당공양올려야될] ▼[samyaksambuddhena] ① samyaksambuddhena(nj.→ƾ.ins.) → [바르고동등하게깨달으신] ▼[araṇāvihāriṇāmagryo] ① araṇa+vihāriṇām([nj.→]ƾ.gen.pl.) + agryaḥ(njp.→ƾ.nom.) → [다툼 없이 머무는 자들 가운데、 최고이다(+라고)] vihāra(ƾ. removing, taking away; roaming or walking for pleasure; sport, play) ② araṇa(nj. departed, gone away; belonging to others, strange; not fighting: ƿ. moving, going; entering into; being inserted; a refuge) < raṇa(ƾƿ. war, combat, fight: ƾ. sound) < raṇ(1.ǁ. to sound; to go; [Ved.] to rejoice) ② vihārin(nj. wandering about for pleasure, roaming, strolling; dependent on; beautiful) < vihṛ(1.ǁ. to take away, seize away; to remove, destroy; to let fall) < vi(ƺ.) + hṛ(1.dž. to take, carry, convey, lead; to carry off or away) ② agrya(nj. foremost, topmost, principal, best; proficient; intent, closely) ▼[nirdiṣṭaḥ] ① nirdiṣṭaḥ(njp.→ƾ.nom.) → [지목되었습니다.] ② nirdiṣṭa(p.p. pointed out, shown, indicated; specified, paticularized; described) < nirdiś(6.ǁ. to point out, indicate, show; to assign, give; to allude to, mention) < nir(ƺ.) + diś(6.dž. to point out, show, exhibit; to assign, allot; to give, grant) ▼▷[ahamasmi] ① aham(pn.Ⅰ.nom.) + asmi(pres.Ⅰ.sg.) → [저는、 (~입니다)] ▼[bhagavan] ① bhagavan(ƾ.voc.) → [복덕갖춘분이시여!] ▼[arhan] ① arhan(ƾ.nom.) → [응당공경되어야될 자이며] ▼[vītarāgaḥ] ① vītarāgaḥ(ƾ.nom.) → [욕망을 여읜 자입니다.] ② vītarāga(nj. free from desire or passion: ƾ. a sage who has subdued his passions) < vīta(p.p. gone, disappeared; set free) + rāga(ƾ. colouring; passion, attraction) < vi(ƺ.) + i(2.ǁ. to go, go to or towards, come to or near) + rañj() ▼▷[na] ① na(ƺ.) → [(否定)] ▼[ca] ① ca(ƺ.) ▼[me] ① me(pn.Ⅰ.gen.) → [그러나(← 그리고)、 나의(→나의 경우에는)] ▼[bhagavannevaṁ] ① bhagavan(ƾ.voc.) +|n|+ evaṁ(ƺ.) → [복덕갖춘분이시여! 이런] ▼[bhavati] ① bhavati(pres.Ⅲ.sg.) → [(+산냐가) 생겨납니다] → 생겨나지 않습니다. ② bhū(1.ǁ. to be, become; to be born or produced; to spring or proceed from; to happen) ▼[arhannasmyahaṁ] ① arhan(ƾ.nom.) +|n|+ asmi(pres.Ⅰ.sg.) + ahaṁ(pn.Ⅰ.nom.) → ▼[응당공양올려야될분이다、 (~이다)、 나는] ② arhat(nj. deserving respect: ƾ. the highest rank in Buddhist hierarchy) ▼[vītarāga] ① vītarāgaḥ(ƾ.nom.) → [욕망을 여읜 자이다] ② vītarāga(nj. free from desire or passion: ƾ. a sage who has subdued his passions) < vīta(p.p. gone, disappeared; set free) + rāga(ƾ. colouring; passion, attraction) ▼[iti] ① iti(ƺ.) → [라는.]
정주(鄭州) 기화사(起化寺) 탑은 정주의 서남쪽 백여 리 가량 되는 밀현(密縣)의 경계에 있으며, 현의 동남으로는 15리이다. 동쪽에는 큰 시냇물이 흐른다. 서쪽은 숭악(嵩嶽), 남쪽은 귀산(歸山)이며 북쪽에는 또 시냇물이 흐른다. 사원의 너비는 동서가 5, 60보(步)이고 남북도 그만하다. 탑은 절의 동남쪽 모서리에 있고 그 북쪽은 절로 이어져 있는데, 탑의 사방은 열다섯 발자국 가량이다. 그 사탑의 기단은 진흙땅 위에 있다. 서쪽면으로는 대여섯 개의 샘이 있고, 남쪽면으로도 역시 샘이 있다. 모두 네모난 구멍 모양으로 그 둘레는 석 자 가량이나 된다. 땅 속에서 샘물이 치솟아 흘러 넘쳐서 시냇물을 이루어 멀고 가까운 논밭에 물길을 대어 주고 있다. 샘 위에는 모두 잣나무 기둥을 내려서 안치하고, 흙탕물 위에 숯이나 모래ㆍ석회(石灰)를 깔아 놓고 다음에는 거듭 진흙을 메꾸어 가장 윗부분은 크고 네모난 돌을 짜 엮어서는 깔아 놓았는데, 그 돌은 마치 여덟 자 쯤 되는 평상과 같았다. 네 면의 허리 부분은 가늘고 길이가 한 자 다섯 치에 깊이는 다섯 치 가량 되는 무쇠로 굳혀 놓았다. 근간에 어떤 사람이 시험삼아 돌 하나를 발굴해 보았더니 그 아래에는 석회가 깔려 있었고 잣나무로 된 둘레까지 있었다. 그리하여 둘레 하나를 뽑아내 보니 길이가 세 길이나 되고 지름이 넉자나 되는 것이 보였다. 처음부터 전륜왕(轉輪王)이 탑을 표출시킨 신비한 공덕의 힘이 아니고는 어떻게 이와 같은 기초와 구조를 마련할 수 있겠는가? 오래도록 그 짝을 찾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그 위에 삼중탑(三重塔)을 얹어 놓았는데, 탑의 남쪽에는 큰 샘이 솟아 꿇어오르며 성난 듯 고동치지만 물소리는 끊어졌으니 이 어찌 신의 조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랴. 유주(幽州)에 도엄(道嚴)이란 스님이 있는데, 속성(俗姓)은 이씨(李氏)로 그 모습이 지극히 뛰어나게 훌륭하다. 그는 본래 수양제가 지은 네 곳의 도량에 들어갔다가 후에 속복(俗服)을 따르게 되었다. 올해 나이가 백다섯 살로, 홀로 깊은 산에 살면서 해마다 7일이 되면 이 탑을 찾아와 공양에 진력한다. 도엄은 그곳의 샘물이 치솟아 쏟아지며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마침내 물을 잘 다루는 곤륜(崑崙) 한 사람을 보내어 샘 속에 들어가 그 안을 살펴보게 하였다. 그러나 오직 돌기둥만 줄지어 서 있는 것만 보이고 그 끝은 헤아릴 수 없었다. 그 가운데 보탑(寶塔)이 있어 높이가 석 자 가량 되었고 홀로 공중에 서 있었는데 네 면은 물로 둘러싸여 듬직하게 머물고 있었다. 끝내 탑이 있는 곳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 샘의 근원을 상고해 보아도 아무도 그 유래를 추측하는 이가 없으며, 시속(時俗)에서 전하는 말로는 아육왕이 세운 것이라 한다. 수나라 고조 이래로 사탑(寺塔)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절 남쪽은 귀산(歸山)이고 절 서쪽은 숭산(嵩山)이며 절은 시냇물 가운데 있어서 땅이 지극히 오염되고 낮다. 매년 두 산에서 큰 물이 내려와 항상 동쪽으로 쏟아져 흐르면서 절의 북쪽을 한 바퀴 돈 다음에 비로소 동쪽으로 흘러 간다. 물이 불면 절은 위치가 높아지고 물이 줄면 절의 위치도 낮아져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침수를 당한 일이 없다. 샘물이 처음 구멍에서 나올 때는 그 문양이 마치 연꽃 모양을 이루고, 흘러 내려가 맷돌 반석을 치면서 물결은 지극히 고요해지는데 물 속의 모래와 돌은 녹색이 선명하다. 나라에서 절의 위치가 요충지에 해당되는 것을 보고는 이곳에 이궁(離宮)을 짓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곳을 찾아가 보니 탑이 있기에 곧 탑을 남쪽으로 옮기려 하였으나 그 기단이 너무 단단하여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근간에 한 스님이 탑의 남쪽에서 밤에 앉아있다가 이 탑을 바라보니 광명이 빼어나게 기이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