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이해가 쉽도록 위 사이트 원 번역문 내용을 단문형태로 끊어 표현을 바꿔 기재한다.
다만, 여건상 일부분만 살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작업중 파일을 별도로 만든다.
그리고 클라우드 드라이브 폴더에 보관한다.
그리고 이후 계속 수정보완해가기로 한다.
그리고 완료되면 본 페이지에 직접 붙여나가기로 한다.
작업중인 파일은 다음 폴더 안에서 K0319_T0971_in 파일을 참조하면 된다.
https://drive.google.com
●차후 링크가 변경되어 연결되지 않을 때는 다음 페이지 안내를 참조한다. buddhism0077
wikiart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eter-Paul-Rubens-sacrifice-of-abraham
Artist: Peter-Paul-Rubens
Sir Peter Paul Rubens (/ˈruːbənz/;[1] Dutch: [ˈrybə(n)s]; 28 June 1577 – 30 May 1640) 플랑드르 작가. 그는 플랑드르 바로크 전통 의 가장 영향력있는 예술가로 간주됩니다 . 루벤스 (Rubens)의 고전적인 구성은 고전과 기독교 역사의 학문적 측면을 언급한다. 그의 독특하고 대대적으로 인기있는 바로크 양식은 운동, 색채, 관능미를 강조하여 카운터 - 리포메이션 에서 홍보 된 즉각적이고 극적인 예술적 스타일을 따랐습니다 . 루벤스는 altarpieces, 초상화, 풍경 및 신화적 및 우화적 주제의 역사 그림 을 만드는 것을 전문화했다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Peter_Paul_Rubens Title : sacrifice-of-abraham Info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Damascus_National_Museum_Umayyad_Castle_Gate
English: The gate of the Umayyad desert-castle Qasr el-Heir al-Gharbi in the Damascus Author Schumeru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Wat Suwan, 2 ซอย เจริญนคร 태국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List of Buddhas [san-chn]
anulakṣaṇa 隨相 [san-eng]
anvaśocaḥ $ 범어 you are lamenting [pali-chn]
gotta 種姓 [pal-eng]
cinaati $ 팔리어 ci + naaheaps up; collects; accumulates. [Eng-Ch-Eng]
causes and conditions (connections) 因緣 [Muller-jpn-Eng]
山家宗 センゲシュウ Mountain school [Glossary_of_Buddhism-Eng]
EVERYDAY MIND IS THE WAY☞ See also: Chao-Chou. “ ‘The everyday mind is the way.’ [Nan-chuan’s] reply to the question, ‘What is the essence of Buddhism?’ It means that the everyday activities of an enlightened person naturally harmonize with the Buddha-mind [because such a mind is not burdened by discriminations].” This famous quote is sometimes attributed to Chao-chou (Nanch’uan’s disciple) in some Western books.
[fra-eng]
médical $ 불어 Aesculapian [chn_eng_soothil]
異熟 vipāka, different when cooked, or matured, i.e. the effect differing from the cause, e. g. pleasure differing from goodness its cause, and pain from evil. Also, maturing or producing its effects in another life.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ṁ]
▼●[羅什] 「世尊, 若復有人, 得聞是經, 信心淸淨, 卽生實相, 當知是人, 成就第一希有功德. 世尊, 是實相者, 卽是非相, 是故如來說名實相.」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음이 깨끗해지면 실상(實 相)을 깨달으리니,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인줄 알겠나 이다. 세존이시여, 이 실상은 상(相)이 아니므로 여래께서 실상이라 말씀하 시나이다.” [玄奘] 世尊, 若諸有情聞說如是甚深經典, 生真實想, 當知成就最勝希有! 何以故? 世尊, 諸真實想真實想者, 如來說為非想, 是故如來說名真實想真實想. [義淨] 世尊, 若復有人聞說是經, 生實想者, 當知是人最上希有! 世尊, 此實想者, 即非實想, 是故如來說名實想實想. 14-03 परमेण ते भगवन् आश्चर्येण समन्वागता बोधिसत्त्वा भविष्यन्ति, ये इह सूत्रे भाष्यमाणे श्रुत्वा भूतसंज्ञामुत्पादयिष्यन्ति। तत्कस्य हेतोः ? या चैषा भगवन् भूतसंज्ञा, सैव अभूतसंज्ञा। तस्मात्तथागतो भाषतेभूतसंज्ञा भूतसंज्ञेति॥ parameṇa te bhagavan āścaryeṇa samanvāgatā bodhisattvā bhaviṣyanti ye iha sūtre bhāṣyamāṇe śrutvā bhūtasaṁjñāmutpādayiṣyanti | tatkasya hetoḥ | yā caiṣā bhagavan bhūtasaṁjñā saiva abhūtasaṁjñā | tasmāttathāgato bhāṣatebhūtasaṁjñā bhūtasaṁjñeti | 복덕갖춘분이시여! 누구든 이 세상에서 이 經이 설해졌을 때 (그것을) 듣고 참되다는 산냐를 일으키는 바로 그들은 최상의 경이로움을 갖춘 보살들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이유인가 하오면, 복덕갖춘분이시여! 어떤 것이건 ‘이것은 참되다는 산냐이다.’라고 하는 바로 그것은 곧 참되지 않다는 산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오신분께서 ‘참되다는 산냐, 참되다는 산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parameṇa] ① parameṇa(nj.→ƿ.ins.) → [최상인] ② parama(nj. most distant, last; highest, best, greatest) ▼[te] ① te(pn.ƾ.nom.pl.) → [그들은] ▼[bhagavan] ① bhagavan(ƾ.voc.) → [복덕갖춘분이시여!] ▼[āścaryeṇa] ① āścaryeṇa(ƿ.ins.) → [경이로움으로] ② āścarya(nj. marvellous, wonderful, extraordinary: ƿ. a wonder, miracle, marvel) < ā(ƺ. near to, towards) +|ś|+ car(1.ǁ. to walk, move, go about; to perform, do, act; to act, behave towards) + ya(kṛt suffix) > carya(nj. to be practised: ƿ. behaviour, conduct) ▼[samanvāgatā] ① samanvāgatāḥ(nj.→ƾ.nom.pl.) → [수반되어진] → 경이로움을 갖춘 ② samanvāgata(nj. attended by, furnished or provided with, Buddha) < sam(ƺ. with) + anu(nj. minute, small) + ā(adv. near to, towards) + gata(p.p. gone; arrived at) ▼[bodhisattvā] ① bodhisattvāḥ(ƾ.nom.pl.) → [깨달음갖춘이들이] ② bodhisattva(ƾ. a Buddhist saint) < bodhi(ƾ. perfect wisdom or enlightenment) + sattva(ƿ. being, existence; nature character) < sat(nj. existing) + tva('state of') ▼[bhaviṣyanti] ① bhaviṣyanti(fut.Ⅲ.pl.) → [될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다. 이것은 참되다.’라는 생각도 어차피 산냐일 뿐이다. 비록 그러한 생각(깨달음)으로 인해 보살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 空(Brahman) ② bhū(1.ǁ. to be, become; to be born or produced; to spring or proceed from; to happen) ▼[ye] ① ye(pn.ƾ.nom.pl.) → [(어떤) 그들은] ▼[iha] ① iha(ƺ.) → [이 세상에서] ② iha(ƺ. here, in this place or case; in this world; now, at this time) ▼[sūtre] ① sūtre(ƿ.abso.loc.) → [經이] ② sūtra(ƿ. a thread, string, line; a fiber; a wire; a rule, canon, decree) ▼[bhāṣyamāṇe] ① bhāṣyamāṇe(njp.→ƿ.abso.loc.) → [설해졌을 때] abso.loc.(동작의 완료순간이 강조) - abso.gen.(동작의 진행기간이 강조) ② bhāṣyamāṇa(pass.pres.p.) < bhāṣ(1.Ʋ. to say, speak, utter; to tell, announce) ▼[śrutvā] ① śrutvā(ger.) → [듣고] ② śru(5.ǁ. to hear, listen to, give ear to) ▼[bhūtasaṁjñāmutpādayiṣyanti] ① bhūta+saṁjñām(Ʒ.acc.) + utpādayiṣyanti(caus.fut.Ⅲ.pl.) → [참되다(← 존재한다)는 산냐를、 일으킬 것입니다.] ② bhūta(p.p. become, being, existing; produced, formed; right, proper) ② saṁjñā(Ʒ. consciousness; knowledge, understanding; intellect, mind) ② utpāday([cuas.] to produce, beget, cause) < utpad(4.Ʋ. to be born or produced, arise) ▼▷[tatkasya] ① tat(pn.ƿ.nom.) + kasya(pn.ƾ.gen.) → [그것은、 어떤] ▼[hetoḥ] ① hetoḥ(ƾ.gen.) → [이유인가 하오면?] ▼▷[yā] ① yā(pn.Ʒ.nom.) → [(어떠한) 그것은] ▼[caiṣā] ① ca(ƺ.) + eṣā(pn.Ʒ.nom.) → [이것은] ② eṣā(pn.Ʒ.nom.sg.) < etad(pn. this) ▼[bhagavan] ① bhagavan(ƾ.voc.) → [복덕갖춘분이시여!] ▼[bhūtasaṁjñā] ① bhūta+saṁjñā(Ʒ.nom.) → [참되다는 산냐이다.] ▼[saiva] ① sā(Ʒ.nom.) + eva(ƺ.) → [그것은、 바로] yā ~, sā ~. : 어떤 것은 ‘이것은 참되다는 산냐이다.’라는 것이다. + 바로 그것은 곧 참되지 않다는 산냐이다. → 어떤 것이건 ‘이것은 참되다는 산냐이다.’라는 바로 그것은 곧 참되지 않다는 산냐일 뿐이다. ▼[abhūtasaṁjñā] ① a|bhūta+saṁjñā(Ʒ.nom.) → [참되지 않다는 산냐이다.] ▼▷[tasmāttathāgato] ① tasmāt(ƺ.) + tathāgataḥ(ƾ.nom.) → [그러므로、 그렇게오신분께서] ② tasmāt(ƺ. from that, on that account, therefore) ▼[bhāṣatebhūtasaṁjñā] ① bhāṣate(pres.Ⅲ.sg.) + bhūta+saṁjñā(Ʒ.nom.) → ▼[말씀하십니다(→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참되다는 산냐’] ② bhāṣ(1.Ʋ. to say, speak, utter; to speak to, address; to tell, announce) ▼[bhūtasaṁjñeti] ① bhūta+saṁjñā(Ʒ.nom.) + iti(ƺ.) → [‘참되다는 산냐’、 라고.]
지광은 속성이 왕씨(王氏)이며, 본래 태원(太原) 사람인데 중간에 서부(徐部)에 자리잡았는데, 그의 아버지 때에 형주(蕭州) 신풍현(新豊縣)으로 옮겨가 살았다. 어머니가 그를 임신할 즈음에 꿈에 강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 한 동자(童子)가 보배로 된 배를 타고 와서 품에 안겼다. 꿈에서 깨어나니 임신의 징후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민하면서 신중하였다. 양나라 태청(太淸, 547~549) 연간 초엽에 국운(國運)이 쇠약해지고 국풍(國風)이 문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후 원제(元帝, 552~554)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지광은 젊고 용감하고 건장하여 장사(壯士)로 뽑혀 군대를 따라 동쪽으로 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이를 통해 세상이 허무하고 덧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마침내는 장가도 가지 않고 오로지 속세를 떠날 생각만을 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 건갈(巾褐:道士)을 만났는데, 신선이 되라고 권고하며 먼저 앞날의 일을 적은 예언서[符籙]를 준 후 다음으로 도교의 제사문[章醮] 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에 지광이 “이 술법으로 도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도사가 “예언서를 지니면 몸을 보호할 수 있고, 제사문은 또한 재물(財物)을 부를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지광은 “이것은 곧 괴로움의 그릇을 보존하는 것인데, 어찌 이것을 도라고 합니까?”라고 하고, 다시 세상을 제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자, 도사는 곡물을 먹지 않는 법에 대하여 가르쳐주면서 이것을 수련하면 반드시 옥청전(玉淸殿)에 이르게 되고 7일이면 날아다닐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한이 되어도 효험이 나타나지 않으니 도사가 말하길 “네가 아직 물을 마시고 있어 결국 옥청궁에 갈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이어서 다시 7일 동안 물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자 도사가 또 말하길 “네가 아직 밤에 잠을 자기 때문에 감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여 그는 또다시 잠을 자지 않고 7일 동안 계속 앉아만 있었다.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 기한을 다 채웠으나 하늘에 오르는 일은 성취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기력은 오히려 좋아지고 굳세어져 사방의 사람들이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그후에 고승(高僧)을 만났는데 그가 계를 내려주고 불제자로 삼았다. 그의 덕행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점차 자취를 감추는 일을 시현하였다. 강릉(江陵)의 장전(張詮)이란 사람은 2대(代)에 걸쳐 앞을 보지 못하였다. 지광이 그에게 일러주기를 “그대의 조상무덤에 있는 관(棺)이 옛 우물을 베고 누워 있다. 무덤을 옮기고 우물의 벽돌을 고쳐 세우면 반드시 복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일러주었다. 이에 곧 그의 말대로 하였더니 앞을 못 보던 사람이 앞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광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기를 청하였으나, 대중들이 모두 꺼려하자 그는 땔나무를 승단에 보시하고 한적한 곳에서 고요히 선정을 닦았다. 그는 또 “개울에 옛 종이 있으니 파내어 절에다 달아놓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는데, 인주(仁州) 자사(刺史)는 허망한 말로 사람들을 미혹시킨다고 생각하고 그의 등을 채찍으로 1백 번 매질하였는데, 지광은 아파하지도 않았으며 몸에 상처도 없었다. 이에 곧 그를 축출하여 상방(尙方:器物을 만드는 곳, 또는 약국)에 가두어놓았다. 힘이 센 사람이 시험삼아 8척이나 되는 형틀에 메달아 놓고 무릎과 종아리를 내리쳤는데, 곁에서 보던 사람들은 가루처럼 부서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지광은 얼굴에 겁내는 기색이 없었으며 살에는 흔적조차 없었다. 또한 옥리(獄吏)는 “듣자니 거사는 배고픈 것을 잘 참아낸다지”라고 하면서 7일 동안이나 먹을 것을 주지 않았는데, 지광은 안색(顔色)과 몸의 기력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때 그는 감옥에서 갇혀있으면서도 시장 골목에서 버젓이 돌아다녔는데, 이는 바로 분신술(分身術)을 쓴 것이었다. 그는 양나라 선제(宣帝) 대정(定) 3년에는 다른 사람한테서 짚신을 빌리면서 “오늘밤에는 급히 길을 떠나야 한다”고 하였다. 이날 밤 3경(更)이 되자 온 성에 불이 났고 사대문(四大門)으로 사람들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여 7천여 명이나 불에 타죽었다. 그러나 지광은 감옥에서 2백 명의 죄수들을 데리고 걸어서 유유히 성을 빠져나왔다. 그는 나이가 40세가 다 되어서야 비로소 머리를 깎게 되었고, 구족계를 받은 이후 두타주(頭陀州)의 북쪽에 있는 사망산(四望山)에서 불도를 수행하니, 여기서부터 복덕이 서리어 비로소 천하가 안정되었다. 성에서 60리 떨어진 곳에 맹수들이 모여 살았는데 그가 그곳에 머물자 이후로는 달려와 그의 선상(禪床) 옆에 편안히 앉아 있었고 저녁마다 산모서리에서 네 개의 등불이 동시에 비추니, 사속(士俗)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갑자기 절이 번화해졌다. 그후 선명(宣明) 2년에는 평릉(平陵)과 현릉(顯陵) 두 능에 모두 절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이는 지난날 그가 예언한 것 중에 하나였다. 그후 양나라 원제(元帝) 때에 이르러 나라가 망하게 되자, 왕림(王林)이 황제를 핍박하여 후량(後粱)으로 나라를 옮겼는데 모두가 표별(表莂)에 참여하였다. 당시 한 재상이 오리고기로 재(齋)를 마련하였는데, 밤에 오리 신(神)이 나타나 “어찌 산 생명을 죽여서 깨끗한 공양에 희생(犧牲)으로 쓰는가?”라고 하여, 그후로는 이런 풍습이 없어졌다. 한번은 여름에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동행한 승려가 수십 명이나 되어 머무르고자 해도 안 되고 가려고 하여도 방도가 없었다. 그때 건너편 언덕에 사람이 타지 않은 배 두 척이 내려왔다. 이때 지광이 웃으면서 큰 소리로 부르니 배가 저절로 멈추어서 곧바로 그들 앞으로 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곧 강물을 건너가게 되었는데, 지광은 이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말라고 하였다. 또한 함양(咸陽)의 불적사(佛迹寺)에 갔을 때 어미 소가 마침 새끼를 낳는 중이었다. 그런데 송아지가 머리를 내밀었다가는 다시 들어가곤 하였다. 이미 새끼가 나올 시간이 많이 지나자 어미 소는 거의 죽으려 하였다. 이에 한 스님이 지광에게 불쌍한 생각이 들지 않는냐고 말하니, 이에 지광이 대답하였다. “이 송아지는 이 절에 있던 거사인데 승단의 물건을 훔쳐서 쓴 일이 있다. 지금 와서 빚을 갚으려 하니 부끄러워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미 소는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는 향로를 잡고 송아지를 꾸짖으면서 “빨리 빚을 갚아야 하거늘 태어나는 것을 왜 부끄러워하는가?”라고 하였더니, 말이 끝나자마자 곧 밖으로 나왔다. 이런 까닭에 이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한 그의 행적은 다 기재할 수가 없다. 그는 개황(開皇) 20년 9월 24일에 사망산(四望山) 개성사(開聖寺)에서 생을 마쳤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75세였다. 그가 세상을 마칠 때가 되면서부터 천향(天香)이 방에 가득하였고 온 절 안에 서남쪽으로부터 음악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생을 마쳤다. 그는 생을 마치기 2년 전에 예언하기를 “생을 마치는 일은 마치 비통(脾痛)6) 과 같은 증세를 보인다”고 하였다. 그리고 율사(律師)에게 묻기를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은 사람도 병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율사가 대답을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가 말하기를 “보신(報身)의 법이 그런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후 그가 생을 마친 뒤에 손을 보니 손가락 세 개를 구부리고 있었다. 인수(仁壽) 원년(元年)에 영제사(永濟寺)의 스님 법귀(法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었다. 그가 염라왕을 만났다가 놓아주어 돌아오던 길에 지광이 궁전을 타고 공중에서 곧바로 내려오는 것을 만나게 되었는데 죄인은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3과(果)를 얻은 성승(聖僧)께서 오셔서 우리들을 구원하신다”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그가 지은 여덟 곳의 절에는 모두 신령스럽고 기이한 일들이 있었는데, 샘물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부처님의 자취가 내려오기도 하였다. 혜일(慧日)도량의 법론(法論)에 따르면 이러한 기적을 모두 보았으며, 어떤 사람은 그를 위하여 비를 세우고 게송을 지어 그의 덕행을 널리 밝혔다.